대통령 일정 계획하던 용산 참모들
한동훈 서천 방문 소식에 시간 조율
한, 눈 맞으며 대통령 기다렸다 인사
윤 "전용열차 같이 타자"…1시간 대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화재로 점포 220여 곳이 소실된 충남 서천 특화 시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함께 화재 현장을 둘러보며 복구 상황과 지원 방안을 점검했다.  지난 21일 한 위원장과 갈등설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공식석상에서 만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40분쯤 서천 화재 현장에 도착했고,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있던 한 위원장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윤 대통령을 맞았다. 악수를 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함께 피해 현장을 돌면서 복구와 지원 대책 등을 점검했다. 윤 대통령은 주민들이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하자 “선포 가능 여부를 즉시 검토하고, (선포가) 어려울 경우에도 이에 준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대통령에게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이 갈등의 악화를 막으려고 신뢰 확인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시장을 돌며 보낸 시간은 40분 안팎, 그리고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이동한 시간은 60분 남짓이다. 대통령실 고위급 관계자는 이날 두 사람의 회동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깜짝 회동 어떻게 이뤄졌나

윤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이날 일정을 사전에 알고 맞춘 건 아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날 새벽 서천특화시장의 화재 상황을 보고 받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점포가 227개나 탄 대형 화재를 확인한 윤 대통령은 "현장에 가겠다"고 참모들과 이야기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현장 방문을 위한 세부 계획을 짜는 동안 정당에서 한 위원장 역시 서천 시장을 방문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같은 날, 같은 현장을 가는데 당과 정부가 시간차를 두고 가는 건 피해 상인에게도 도리가 아니다"는 판단이 이뤄졌다. 공연히 따로 현장을 방문해 갈등설을 증폭시킬 필요가 없다는 참모진의 결단이었다.

대통령실이 확인한 한 위원장의 현장 방문 시간은 오후 1시. 대통령실 참모들은 당초 오후 3시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의 서천 시장 방문 일정을 오후 1시30분으로 앞당겼다.

눈 내리는 서천에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맞이하며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어깨를 감싸며 인사를 하는 장면은 이렇게 완성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관계는 20년"이라며 "민생을 위한 일정에서 함께 만나는 것을 거절할 사이도 아닐 뿐더러 현재로서는 함께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 대통령, 한 비대위원장, 김태흠 충남도지사, 정진석 의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 대통령, 한 비대위원장, 김태흠 충남도지사, 정진석 의원.

윤 "전용열차 같이 타자"…1시간의 대화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화재 현장을 점검한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 "열차로 같이 타고 갈 수 있으면 갑시다"라고 제안했다. 한 위원장도 감사하다며 함께 열차로 이동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두 사람이 열차에서 함께 한 시간은 1시간여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독대를 한 건 아니다. 대통령 전용칸에는 한 위원장과 함께 정무수석, 홍보수석 등 대통령실 참모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국무위원이 함께 탑승했다.

때문에 열차에서 민감한 현안이 논의된 건 아니라는 게 동승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열차에서는 화재 현장에 대한 대책과 함께 설을 앞둔 민생 문제가 다양하게 이야기됐다고 한다.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한 위원장도 취재진과 만나 "(대통령과) 여러 가지 민생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길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당내 공천, 혹은 김경율 비대위원의 거취 등과 관련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생 지원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결국 정치는 민생 아닌가. 그런 점에서 민생에 관련 여러 가지 지원책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건설적인 말씀을 했고 제가 잘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자리가 그간 갈등의 봉합 수순임을 숨기지는 않았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변함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지금보다 더 최선을 다해 4월10일에 국민의 선택을 받고 이 나라와 국민을 더 잘살게 하는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급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이날 만남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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