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YS, 그리고 DJ와 JP

사실이 그랬다. 내가 꼭 민정계여서가 아니라, 나는 합당 이 후 부총장이다 보니 김영삼 씨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곳저곳 수행도 해보면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과거 민주화운동 경력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 내가 알고 잇는 김영삼 씨가 아니었던 것이다.

수행하는 차 안에서 함께 앉아 있다 보면, 나로서는 당 대표최고위원이고 또 정치적으로도 후배이다 보니 변화무쌍한 정치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다. 가령 작은 민주당과 평민당의 합당 움직임이 있을 때였다.

“이기택 시나 박찬종 씨나 다 대표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십니까?”

“에이, 그거 아무 것도 안됩니다. 박찬종이 이기택이…다 팔인팔색이고, 그 사람들 하나같이 다 똑같아요, 그거 절대 안됩니다. 이제 두고 보세요.”

당시 나는 꼭 그렇게만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만두고라도 나는 거침없는 그 표현에 적잖이 놀랬다. 그래도 한 때는 함께 했던 사람들이고 또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적 영역을 개척해 온 사람들에게 좀 심하다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결국 그들과 평민당은 합당을 했다. ‘두고 보라’는 장담은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그런가하면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식의 질문에 언제나 대답은 매우 원론적이고 기초적인 답변을 주었다. 설명이 없는, 어찌 보면 원칙적이고, 또 어찌 보면 단순 목표 설정만 하는 형이었던 것이다. 남을 이해시키거나 설득시키는 과정은 전혀 없이 큰 원칙만 확인하면 그것이 끝이었다. 그러면 긴 수행시간은 침묵이 흐른다. 그럴 때마다 길은 또 왜 그렇게 잘 막히는지…어색하기 마련이었고 나는 ‘무슨 말을 해 볼까?’ 이런 고민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사실 이런 김영삼 씨의 성격은 위기 상황에서는 결단력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만큼 오랜 야당생활을 통해 김영삼 씨가 형성해 온 이미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여당으로서 당장의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치인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이 결단의 득과 실은 무엇이고, 그리고 이것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세심하게 배료하고 토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좀체로 김영삼 씨는 그런 토론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김영삼 씨 하면 아무튼 수행시간 내내 ‘무슨 말을 할까?’를 고민해가며 어색해 하던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말 나온 김에 여담으로 얘기하자면 여기에 또 완전히 대비되는 게 김종필 씨였다. 사람들은 유신 잔당이네 본당이네 하면서 말들을 하지만, 사실 우리세대의 사람들에게 김종필 씨는 그렇게 나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물론 6․3세대로 한일협정 비준의 주체였던 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사회를 알아 갈 즈음, 김종필 씨는 삼선개헌을 반대해 박정희 씨로부터 견제를 받아야 했고 결과적으로 원치 않는 외유도 많이 했으며, 게다가 정치적으로 표류할 때 언론에 흘러드는 정보에 따르면 그림을 그리고, 또 한마디씩 할 때마다 문자를 어찌나 많이 쓰는지…아무튼 다른 정치인과는 좀 달리 묘한 매력을 풍기는 정치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5․16을 일으킨 젊은 장교의 이미지는 상당히 탈색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합당을 통해 한 식구가 되고 난 후 막상 만나보니 과연 고담준론(高談峻論)이었다. 이 양반이 한 번 입을 열었다하면 어쩌면 그렇게도 기억력도 좋고 화술이 좋은지, 게다가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투로 얘기를 한 번 시작했다하면 나는 아예 듣기만 하다가 목적지에 다 오는 식이었다. 그 얘기가 하나같이 재미있음은 물론이요,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게 했다.

직설적이라기보다는 비유법을 즐겨 쓰는데, 또 그 맛이 중첩된 이미지를 풍기면서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참 편하게 해 주고 또 윗사람에 대한 예의만큼은 어찌나 깍듯한지 합당 초기에 김영삼 씨에게 했던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김종필 씨는 역시 그 속에서 지기 입지를 찾아간다. 도대체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와도 있는 사람이다.

이번에 DJP연합도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 그 얘기가 나올 때 ‘저건 성사된다’고 봤다. 주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지만 적어도 나는 김종필 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외로 잘 될 겁니다.’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YS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또 동시에 DJ와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자기 입지를 찾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절묘하다 싶을 때가 많다. 이번에만 해도 겨우 10% 미만의 지지율을 가지고 공동 집권의 지분을 차지해 가는 걸 보고 있자면, 역시 그 정치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김종필 씨 역시 김영삼 씨만큼이나 독특한 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김종필 씨가 박정희, 김영삼 씨에 이어 세 번째로 선택한 파트너, 김대중 씨의 경우는 두 사람과는 또 다른다. 김대중 씨와 나는 긴 시간을 얘기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은 저 유명한 사건 ‘경기도지사 경선 사태’를 겪으며 꽤 깊은 우여곡절을 겪은 사이가 되고 말았다.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 김대중 씨에 대한 나의 느낌은 ‘너무 강하다’였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의외로 부드럽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시대를 풍미한 대정치가답지 않게 아이 같은 측면도 어찌나 많은지 나는 처음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좋아보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경기도지사 사건을 겪으며 나는 또 전혀 다른 김대중 씨의 모습도 봤다. 그렇게 또 차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자기 이해관계에 얽히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당사자인 나에겐 그것이 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김대중 씨의 참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대중 씨는 결코 단순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김종필 씨와는 또 다른 아주 독특한 복잡함이다. 김영삼 씨가 의외로 심플하다면, 김대중 씨는 의외로 복잡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두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도 대조적인지…그리고 그들과는 또 다른 김종필 씨.

이 세 사람이 펼쳐 온 드라마틱한 정치 역정은, 아무리 뛰어난 작가가 있다 해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니, 아무튼 셋 다 시대를 풍미하기에 충분한 묘한 매력과 정치력의 소유자들임에는 분명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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