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의 어색한 만남

그 며칠 후 당시 내 비서관이었던 김재익 씨의 서울 행정대학원의 동문이었던 이강래 비서실 차장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김대중 총재의 비서를 했던 남궁진 의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의원은 내 고교동창이었다.

"이 문제로 우리가 무슨 원수될 것도 아니고… 자네가 김총재 좀 만나보지?"

"내가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겠나!"

마침내 서교호텔에서의 조찬 약속이 잡혔다. 경기도지부가 주최한 경선대회일로부터 무려 1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실 나는 입당 후에 김대중 총재 부부와 함께 노래방가지 가며 참 좋은 관계였는데, 이렇게 불편하게 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거북하고 어색한 자리였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돌아가는 정국 얘기며, 그리고 과거 이종찬 씨와의 관계 얘기며, 또 대선 당시 민주당 측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결국 국민당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얘기 등을 나누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막상 부딪쳐 만나놓고 나니 나도 마음이 편했다.

"솔직히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이렇게 있는 대로 상처를 다 받은 상태에서 선거에 나간들 무슨 좋은 결과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여기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대의원들이 결정해 준 후보고, 당에서는 당연히 공천을 주는 것이 순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제 생각으로는 일단 공천을 확정해서 제 누명을 벗겨 주시고, 그 다음에 제가 양보하는 문제는 사실 그렇습니다. 저를 영입하고 추천한 사람이 이기택 총재인데 제가 어떻게 그 분과 상의도 없이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일단 두 분이 만나십시요. 그래서 두 분이 결정을 내리면, 저는 그 때에는 흔쾌히 그 결정을 쫒겠습니다."

"장의원이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이기택 총재, 그 사람은 나 만나기 싫소. 사람이 약속해 놓고 오다가 되돌아가고 말야 …"

나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사정은 이러했다. 얼마 전에 내 문제를 포함해 지자제 선거와 관련해 양쪽이 간격을 좁혀보자며 김정길 의원이 이기택 씨와 김대중 씨와의 만남을 주선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총재는 일산의 아파트에서 저녁까지 해 놓고 기다리는데 있는데, 막상 들어오기는 김정길 씨혼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김대중 총재에게 오는 길에 거의 집 앞까지 다 왔는데 갑자기 이기택 총재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김대중 총재 입장에서는 오죽 당황했겠는가. 그러면서 이총재는 만나기 싫으니 자꾸만 나더러 결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 무엇도 결정을 못합니다. 일단 두 분이 만나야 제 문제도 해결이 되고 선거도 치를 것 아닙니까. 일단 두 분이 만나십시요!"

그리고 돌아와 다시 이기택 총재에게 '그 쪽에서도 반절 정도는 뜻이 있으니까 일단 두 분이 만나십시요'라며 강력히 만남을 권했다. 얼마나 그렇게 설득을 했을까, 마침내 이기택 총재로부터 한 마디가 나왔다.

"만나라면 만나야지!"

부랴부랴 한광옥 씨에게 전화를 했다. '어떡하겠소, 우리 둘이 십자가를 집시다. 내가 어떻게든지 이총재는 나가시게 할테니 한의원은 김대중 이사장을 책임지쇼' 내 말에 한광옥 씨도 '그래? 그래야지!'했고…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었다.

무슨 팔자가 그리도 가혹해 내 문제까지도 내가 직접 뛰어다니며 매듭을 풀어야만 했던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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