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뚤린 여신심사 서류만보고 대출

[정승은 기자]  KT의 자회사인 KT ENS 직원이 은행으로부터 가짜 매출채권을 담보로 2800억원의 사기 대출을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두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사건 개요를 살펴보면  KT ENS의 납품 업체 N사는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휴대전화를 구입해 납품하고 발생한 매출채권을 납품 업체들끼리 만든 특수목적회사(SPC)에 양도했다. SPC는 이를 담보로 은행과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매출채권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였다.


▲ KT ENS 자회사 직원 2800억원 대출사기

KT ENS 시스템 영업 담당인 과장 김모(51)씨가 N사와 공모해 2010년 이후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발생한 것처럼 꾸며 허위 매출채권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 모씨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출 사기를 벌였는데 이로 인해 얻은 이익이 뚜렷하지 않고, 만약 거액을 중간에서 가로챘다고 하더라도 해외 도피 등을 하지 않고 경찰에 자진 출두한 점 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6일 금융감독원은 KT ENS 소속 직원이 협력업체와 공모해 2010년부터 가짜 매출채권을 담보로 시중은행 등에서 2800억원의 대출 사기를 벌였다고 발표했다.

김 씨는 매출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협력업체와 짜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끊어줬다. 협력업체는 이 허위 세금계산서를 담보로 하나은행, KB국민은행, 농협은행 등 시중은행과 저축은행들로부터 2800억원의 부당대출을 받았다.

이는 이른바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로 납품 업체가 원청업체에게 물품을 납품한 뒤 구매 대금이 입금되기 전에 미리 세금계산서를 끊어주고 이 세금계산서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 씨는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 KT ENS와 관련 6개 업체는 물품거래가 없었는데도 서류를 위조해 100여 차례에 걸쳐 부정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출 사기를 벌인 김모씨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갔는지에 대해 아직 밝혀진 점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사기를 통해 대출된 거액의 금액이 상환 시점에 다른 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아 상환금을 납입하는 등 '돌려막기'에 소요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최초로 대출받은 금액은 어디에 사용됐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해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석채 전 KT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2800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사기 대출 과정에서 금융사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관련 서류가 모두 정교하게 위조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는데도 직원 1명이 전부 했다고 하기에는 의문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황창규 신임회장의 인사 쇄신으로 사퇴한 김성만 전 KT ENS 대표이사는 서유열 사장과 같은 '영포 라인'으로 이석채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김 전 대표이사는 네트워크부문장 시절 무궁화 위성 헐값 매각 논란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석채 전 회장 검찰 조사 때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에 이번 사기 대출 사건에는 김 모씨 이외에도 추가적으로 함께 사기에 공모한 인물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KT ENS에 따르면 김 모씨는 구매 업무와는 상관없는 영업 직원이다. 현재 대기 발령 상태로 인재개발팀에 소속 돼 있다. 일각에서는 김 씨가 명예퇴직 대상이었으나 회사에서 퇴직을 시키지 못해 대기 발령을 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회사가 자르지 못한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나오고 있다.

김 모씨가 중간에 사기 대출로 거액을 챙겼다면 대기발령 상태임에도 회사를 관두거나 해외 등으로 도피를 했을텐데 회사에 계속 머물른 점, 자진 출두한 점 등도 의문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황창규 회장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등에 불만을 품은 임직원들이 회사를 나가면서 그동안 내부에서 벌어졌던 비리 등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러한 KT의 곪은 고름이 더 나올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동안 전임 회장과 낙하산 임원들이 벌인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임 회장과의 연관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한바탕 회오리가 일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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