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는 누구인가. 내가 혹시? 아니면 우리 주위에서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가 나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닐까.나는 1980년 서울 공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바로 그 해 봄에 건축 설계와 감리, 엔지니어링을 전문으로 하는 (주)공간에 입사하였다. 내가 입사할 당시 회사는 아직 중소기업 수준이었으므로 설계 부서의 총 인원은 고작 30명 남짓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었다.그 당시 정부가 경제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공장이나 건물, 항만공사, 도로와 교량 등 건설 경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의 박 상
검찰 수사를 피해 도주 중인 유병언(73)전 세모그룹 회장(청해진해운 회장)이 밀항을 위해 브로커에게 100억원을 제시한 정황이 사정당국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정당국에 따르면 유씨측 인물은 이달 초 밀항 브로커 A씨를 접촉, 중국 등지로 밀항이 가능한지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유씨 측이 내건 밀항인원은 총 5명으로 실제 성사 시 100억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한편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첫 재판(공판준비기일)이 참사 56일만인 10일 광주지법에서 열렸다. 세월호 이준석(69) 선장이 이날 광주지법에서 열린 제1회
아침에 일어나보니 작은 방에서 혼자 자고 있다.어젯밤에 술을 먹고 들어 왔나? 하면서 버릇처럼 화장실로 향한다.이제 술을 먹으면 필름도 끊기는군 하면서 치카치카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고, 얼굴에 로션도 바르고, 부엌으로 향한다.아내가 없다.이 사람이 어디 아픈가 하고 방에 들어 가 보니 아내가 아직도 자고 있다.내가 어젯밤에 실수를 많이 한 모양이군 하면서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한다.식탁이 깨끗하다.전기밥통을 열어보니 차디 찬 밥이 떡 덩어리라.이 사람이 말야 내가 아무리 술을 먹고 실수를 했다손 치더라도 어디 그게 한 두 번이
내가 감히 인간의 냉혹한 운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명다운 운명과 조우하여 그것에 맞서 격렬하게 싸워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삶의 운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진행되었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지금쯤,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우연 혹은 행운 덕분에 이리저리 우회로를 거쳤지만 크게 옆길로 벗어나지 않은 운명 말이다.그러나 이건 고백이나 짧은 회고록 따위는 아니다. 뭐랄까?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내보이는 것이 아니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슈마허(E. F. Schumacher)가 쓴 책 제목이다. 무얼 말하는 것일까?산업혁명 후 자연과학이 발달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경제는 계속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렇게 경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기술은 점점 복잡해지고 공장은 점점 더 거대해지며, 지금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 전 세계가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어 자본주의는 점점 더 공룡화하고 있다.그런데 경제는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 것인가?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욕망을 먹고 자라왔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비할 바 없는
인터넷일간신문 시사플러스에서 2014년 6월1일자로 인사를 실시 시사플러스 심평엽 광고국장 前 월요신문 취재부장, 광고국장前 시사서울 광고국장前 파이낸셩 투데이 광고국장
폭도들과 대화는 무슨 대화야!한 때 연속극 ‘모래시계’가 몰고 온 열풍은 대단했다. 급기야는 ‘모래시계 세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이른바 ‘4.19세대’ ‘6.3세대’하는 식으로 한 시대를 지칭하기에 이른 것인데, 글쎄 나는 80년대의 젊은이들을 가르키는 용어로 이 말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선명성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체성을 담아내기엔 너무 적합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광주’로 상징되는 80년대의 젊음들을 뭐라고 지칭할 수 있을까? 그것은 후 일 역사에 미루기로 한다.내가 여기에서 굳이 8
노여움이 지나쳐…그럭저럭 나 혼자 속 끓이고 말면 끝나는 일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숨길래야 술길 수 없는 일이 터질 때였다. 분명 '대표에게 보고를 안한 일'들이 아침이면 신문에 막 나올 때는 정말 속수무책이었다.어쩔 때는 기사가 난 신문을 슬쩍 숨겨보기도 하고, 또 신문 보실 시간에 엉뚱한 일을 핑계 삼아 들어가서는 시간을 뺏어보기도 하고…그러나 그런 '비밀 아닌 비밀'은 오래 지켜질 수 없는 법. 선거가 끝난 얼마 후였다. 하루는 출근하시자마자 나를 향해 '장보좌 들어오시
죽음이란 사전적으로는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이 언제부터인가는 아직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죽음의 기원은 명백하다.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문학적으로는 죽음이란 모든 것이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고통과 허무함을 상징한다.1768년에 발행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초판에서는 죽음에 대해 (영혼의 존재와 그 불멸성을 전제로)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정의했지만 2007년 판에서는 ‘모든 생물이 종국에 경험하게 되는 생명이 완전히 중단되는 현
눈을 자기 발밑으로 깔면 주위 한 평 정도 땅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조금 더 눈을 들면 자기가 사는 마을이 보이고, 좀 더 들면 자기가 사는 도시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러다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온 우주가 내 눈 속으로 들어온다.이렇게 우리 머리 위로는 137억 광년이나 되는 아득한 저편까지 펼쳐진, 지금도 계속하여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있다.그런데 우리는 우리 머리 위에 그렇게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직 눈앞에 펼쳐지는 작은 세상사에만 눈을 번뜩이며 탐욕에 눈이 어두워 남을 해치고, 배반하고
시니어 문제에 천착한지 이제 1년하고도 6개월.이 1년 6개월의 기간 동안에 국내의 시니어에 대한 인식은 많이 일반화 내지는 활성화 되었다.메이저 신문사에서도 시니어 판을 따로 발행하고 있고, 유수의 인터넷신문사에서도 시니어 전문 잡지를 구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모 건설사에서도 시니어 전문 잡지를 준비하고 있다라는 소문이고, 정부에서도 시니어 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하여 그 대책을 만들고는 있으나 아직 폐부로 느낄 만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지금 현실적으로 시니어들은 퇴직이라는 절차를 거쳐 사회에 버려(?)지고 있는데 과연 이들을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워요운경 이재형 선행을 생각할 때 나는 곧 우리정치사의 비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의 삶 자체가 곧 우리 정치의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정치에 입문했던 시기는 선생이 10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정계에 복귀했던 바로 그 시점이었는데, 선생은 어렵게 결단을 내렸던 이 복귀에서도 다시 한 번 크나큰 상처를 받은 채 돌아서야만 했다.바로 그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나였기에 선생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각별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막 정치에 입문했던 나였기에 그 모든 과정은 더 큰 충격이었다. 이제 선생
그러고 보니…… 파리가 그립다.파리의 고약한 겨울 날씨가 생각난다. 찬비가 내리면 비에 젖은 우울한 거리에 낡은 도시의 온갖 서글픔이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리의 뒷골목에 비가 내리고 하수구가 역류하며 악취가 허공으로 퍼져나간다. 남루한 차림의 알코올 중독자인 집시 노인이 비를 맞고 걸으면서 투덜댄다. “언제나 늙어가고 삶은 어느덧 지나가버리고 없네.”파리의 우울.보들레르가 말한다.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 오, 더러운 도시여! 늙은 창녀에 취한 늙은 호색한처럼, 그 지독한 매력이 나를 끊임없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차기 국무총리로 발탁하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하는 인사를 단행했다.안 총리 후보자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대선자금'을 수사하며 살아 있는 권력에도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다.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 수준의 정부조직 개편이나 법률 정비가 필요한 이때에 그의 법률적 지식과 원칙, 소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전임자보다 10년 이상 젊은 59세라는 점도 그의 패기를 기대하게 한다.그러나 안 후보자도 정홍원 총리에 이어 법조인 출
은행원 생활 20년, 그리고 사회에 나와 사업을 시작한지 15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업체들을 대출이라는 명목하에 옆에서 지켜보고, 내 사업이랍시고 직접 해보고 나니 수많은 기업인들을 만나게 되었다.80년대 초 고도 성장기에는 영등포 구청 근처에 공장들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의 창업 열의는 대단했다. 당시에 율산그룹이니, 제세그룹이니 또 대우그룹이니 하는 성공 기업들이 있어 젊은이들을 창업의 현장으로 내몰 동기가 충분했다.그러나 지금은 정부에서 젊은이들을 향하여 창업일선으로 나가라 나가라 라고 등을 떠밀어도 섣
원로라는 말은 어떤 업에 오래 종사하여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일컫지만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자칭 원로가 득세하였던가. 그 고리타분한 단어가 풍기는 역겨운 여운 때문에 나는 그걸 질색한다. 당연히 나는 원로 변호사가 아니다. 내가 무슨 경험과 공로가 많은 변호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자칭 고참 변호사라해도 별 무리는 없으리라.법조인 경력 근 30년에 얼마나 많은 소장과 준비서면, 기타 법률문서를 작성, 제출하였는가. 그런데 소장과 준비서면은 그 독자가 우선적으로 판사라고 할 수 있으니 우리는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변호사란 숙명적으로 남의 분쟁 속에 들어가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화를 내는 사람, 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화 때문에 파멸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에 법원에 있을 때 담당했던 한 형사사건이 기억난다.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화가 나니, 석유통을 들고 와 아내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는 라이터를 손에 들고 불을 붙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이에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불을 붙일 테면 붙여보라며 대든다. 남편은 겁만 주려고 라이터를 켰으나 그만 아내 몸에 불이 붙어버렸다.순식간에 아내는 불길에 싸이고,
만 달러와 연기처럼 사라진 천 달러축구와의 인연은 대학시절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정치에 들어온 후 곧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게 되었다. 대학시절부터 형성된 인맥이 인연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한국 축구팀의 단장을 맡아 두 번의 국제경기를 치루었다. 그런데 나는 그 두 번의 국제경기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두 번의 국제경기를 치루면서 내 생애 최고의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당시 LA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은 싱가폴에서 치러졌는데 사우디와 마지막 접전을 앞둔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아시아 축구에는 심판의 불공정 사
1972년 10월.우리는 민족의 영영한 빛을 보았다.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일생일대의 갈림길인 고입에 매진하여야 할 16세의 하찮은 우리에게 선생님들께서는 진학 지도고 뭐고 다 팽개치(시)고 각 동네별로 구역을 정하(시)어 친히 이장님들을 찾아 댕기(시)며(=다니시며) 홍보 하시기에 바쁘셨고, 또한 문교부께서는 친절하게도 고입 시험 중 사회 과목에 나오는 헌법 및 법률 문제는 구 헌법, 구 법률에서 출제하(시)기로 하시었다,그 덕분에 우리는 아무 짝에도 필요없는 죽은 법률을 죽어라고
1. 사법시험 합격9월 중순을 넘어서면 계절은 벌써 가을 기운이 완연한데 한 해도 훨씬 기울어져 있어서 허전하기 짝이 없고, 나르는 화살처럼 빨리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워서는 지독히 무더워서 짜증스러웠던 한여름이 새삼스럽게 그립기조차 하는 것이다.10년 가까이 연례행사처럼 이때쯤이면 몹시 초조하고 불안하여 가위눌린 기분으로 식욕은 없고, 때로는 다소 멍한 상태에서 일종의 가벼운 기억상실증까지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고시 합격자 발표가 점점 코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이런 심정은 아마 무슨 시험이건 시험을 치러본